미로의 도시들

천년의 미로도시에서 길을 잃다 – 모로코 페스의 골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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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미로도시에서 길을 잃다 – 모로코 페스의 골목이야기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열어둔 숙소의 창문 사이로 훅~하고 불어오는 뜨거운 열기에 잠을 깨긴 했지만 여행의 피로가 냉큼 달아날 만큼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오늘은 열 네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도착한 페스를 여행하는 날! 페스는 모로코의 고대도시 원형이 잘 보존되어있는 곳이며, 아직도 3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 긴 여행의 일상 속에서 오랜만에 누린 늦잠 호사

거대한 성곽 안에 천 년 넘게 내려오는 미로같은 골목길을 따라 다양한 골목풍경을 들여다보는 것이 여행의 핵심 포인트인데, 중요한 건 한 번 발 길을 들여놓으면 어느새 방향 감각을 잃게 되고, 결국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 그래서, 골목마다 길 잃은 여행자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가이드비를 챙겨주고 출구를 찾아 골목을 따라 나서다보면, 어느새 삐끼로 돌변하는 가이드 때문에 혈압이 팍팍 오르게 된다. 양탄자 가게나 향신료, 액세서리, 가죽 공예 등 가게마다 계속 걸음을 멈추며 쇼핑을 권유한다. 짜증도 소용없다. 가이드는 나몰라라 하면서 여유만만이다.

이왕 이렇게 된거 물건이나 구경해보자 하면서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와! 하면서 절로 탄성이 나오는 것이다. 정말 수준급의 수제품들이 화려하면서도 아름답게 가게 안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여행자의 지갑이 열리는 건 어쩌면 모로코 장인들의 빼어난 수공예품 제작 솜씨에 대한 일종의 조건반사 같은 것인 듯 하다.

어느새 친밀감이 생긴 가이드를 따라 구비구비 골목을 더 방황하다 보면 꿈에도 그리던 페스의 출구를 만나게 된다. 안녕! 가이드! 그리고 양손에 잔뜩 들려있는 값비싼 기념품!

 

▲ 페스 성곽 근처에 있는 망인의 공동묘지

 

▲ 페스 성곽과 성문의 모습

위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미리 봤던 페스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나온 내용이다.
나는 페스의 성곽에 들어가기 전 ‘아무리 길을 잃어버려도 가이드는 쓰지 않겠다!’라며 나름 잔뜩 결심을 굳히고 성문으로 들어갔다. 미리 준비해 둔 골목길 지도를 보며 천연 염색 작업장을 찾아 열심히 미로 같은 골목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결국 길을 잃고 허둥거리기 시작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가이드들이 서로 길안내를 자처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거였군!’ 이미 영상을 통해 학습한 상황이라 쉽게 이들을 물리치고 꿋꿋하게 다시 골목을 헤메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내리 꽂는 강렬한 햇살과 열기때문에 몸은 금새 파김치 상태가 되어버렸다.

▲ 골목의 주요 지점마다 발견하게 되는 무슬림 예배당. 신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다

 

 

▲ 천연 염색 공장의 모습. 비둘기와 소의 배설물, 나뭇재 등을 활용하여 천역 염색을 한다. 냄새가 독해서 근처에 가면 기침이, 심하면 구토가 나온다.

▲ 달콤하고 따뜻한 민트차. 염색 냄새로 힘들어한 코를 진정시켜 준다.

그때였다. 골목길 귀퉁이 그늘 벽에 기대어 앉아 쉬고 있는 나를 향해 동네 꼬마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동양인 혼자 골목길을 허우적 거리고 있는 모습이 애들 눈에도 퍽 안되 보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가이드북에서 찢어낸 천연 염색공장의 사진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아이들이 자기들을 따라오라며 나를 끌고 골목을 구비구비 달리기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다구! 좀 천천히 가자! 니들의 이 불쌍한 외국인에 대한 친절, 평생 잊지 않을께!’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은 언제나 착하고 친절한 것 같았다.

한참을 돌고 돌아 도착한 천연염색 공장 앞. 이때 였다. 7명쯤 되는 아이들이 나를 빙 둘러싸더니 일제히 돈을 달라며 손을 내밀고 빽빽 소리를 질러댔다. 주위에 있던 험상 궂은 아저씨들도 하나둘 모여들고…  ‘아차, 내가 순진하게 애들한테 당했구나!’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돈을 털리고 나니 맥이 축 빠졌다. 아.. 그래도 페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천연 가죽 염색 공장을 직접 볼 수 있었으니 그나마 그걸로 족했다.

그 아이들, 지금도 나같이 순진한 길잃은 외국인들 가이드를 하며 열심히 돈을 벌고 있겠지! 목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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